월드컵에서 가장 강한 팀이 항상 이기는 걸까요? 저는 이번 C조 대진표를 보면서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5회 우승의 브라질, 4강 신화의 모로코, 25년 만에 돌아온 스코틀랜드, 52년 만에 귀환한 아이티. 어느 팀 하나 간절하지 않은 팀이 없는 조입니다. 숫자와 랭킹만으로는 절대 다 설명이 안 되는 서사가 이 조에 가득합니다.
브라질과 모로코, 팩트가 말해주는 것들
브라질의 이번 대회 키워드는 단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입니다. 2025년 5월 브라질 축구협회(CBF)가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그를 선임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CBF, 즉 브라질 축구협회(Confederação Brasileira de Futebol)란 브라질 국내 축구 행정 전반을 총괄하는 기구로, 역대 단 한 번도 외국인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 금기를 깼다는 것 자체가 현재 브라질 축구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를 방증합니다.
실제로 브라질은 2026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CONMEBOL 예선)에서 18경기 8승 4 무 6패, 5위로 겨우 본선 직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여기서 CONMEBOL 예선이란 남미 10개국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장기간 맞붙는 대륙별 최종 예선을 의미합니다. 예선 최종전에서 볼리비아에 0-1로 지고, 친선 경기에서도 일본, 프랑스에 연속 패배한 브라질이 안첼로티 부임 이후 크로아티아·파나마·이집트를 상대로 11-4 합산 스코어를 기록한 것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솔직히 이 성적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상대 수준을 따져보면 결과가 주는 안도감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습니다.
브라질이 이번 대회에서 마주하는 첫 번째 장벽이 바로 모로코입니다. FIFA 랭킹(FIFA World Ranking)을 보면 브라질 5위, 모로코 7위로 네덜란드·벨기에·독일을 모두 앞서는 수치입니다. FIFA 랭킹이란 국제축구연맹이 각국 대표팀의 경기 결과와 상대 전력 등을 반영해 산출하는 공식 순위 지표입니다. 단 두 계단 차이라는 사실이, 이 경기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수치로 보여줍니다(출처: FIFA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제가 모로코에서 가장 우려스럽게 본 대목은 랭킹이 아닙니다. 월드컵을 10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단행된 감독 교체입니다. 4강 신화를 이끈 왈리드 레그라귀 감독이 사임하고, U-23(23세 이하 대표팀) 출신인 모하메드 우아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여기서 U-23이란 만 23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된 연령 제한 대표팀을 뜻하며, 성인 A대표팀과는 경기 강도와 전술 체계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메이저 대회 직전에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입니다. 물론 우아비 감독이 취임 후 5경기 3승 2 무 무패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제 경험상 이런 부임 초기 무패 행진이 실제 강팀과의 맞대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C조 첫 경기에서 브라질과 모로코가 충돌하는 만큼, 이 경기의 결과가 조 전체의 판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C조의 핵심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브라질: 안첼로티 감독 체제에서 세대교체 완성 여부, 네이마르 부재를 채울 공격 옵션
- 모로코: 감독 교체 이후 전술 연속성 유지 여부, 핵심 수비수 부상 공백
- 스코틀랜드: 12회 연속 메이저 대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심리적 트라우마 극복
- 아이티: 52년 만의 월드컵 복귀, 불안정한 국내 환경에서 비롯된 준비 과정의 한계
스코틀랜드와 아이티, 숫자 뒤에 감춰진 이야기
스코틀랜드는 이번 대회가 통산 9번째 월드컵 본선이지만, 메이저 대회(월드컵 8회, 유로 4회 포함) 12번 연속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기록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트라우마, 즉 반복 학습된 패배 패턴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킹(Choking)' 현상, 즉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 발휘를 못하는 심리적 압박 현상이 조직 단위로 나타날 때 얼마나 무서운지, 스코틀랜드가 지난 수십 년간 보여줬습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객관적인 전력 우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나마 스티브 클라크 감독은 최근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퀴라소를 4-1로 꺾고, 볼리비아를 4-0으로 완파하는 과정에서 레인저스 공격수 로렌스 쉥크랜드가 맹활약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저도 이 경기 결과를 확인하면서 '이번엔 좀 다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물론 상대 수준을 감안해야 하지만, 골 감각이 올라온 공격진과 안정된 조직력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아이티 이야기는 솔직히 제가 이번 C조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입니다. 5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복귀했는데, 국내 치안 불안으로 인해 모든 홈경기를 800km 떨어진 퀴라소에서 치러야 했습니다. 감독인 세바스티앙 미녜 조차 18개월째 아이티 땅을 밟지 못한 채 팀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말해줍니다. FIFA도 이런 특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며, 분쟁·재난 지역 소속 대표팀에 대한 별도 지원 규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FIFA 공식 홈페이지).
물론 투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습니다. 아이티는 이번 대회 참가국 중 두 번째로 FIFA 랭킹이 낮은 83위이고, 페루와의 최종 점검 경기에서 1-2로 패했습니다. 비판적으로 보면, 불안정한 국내 환경이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와 전술 훈련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는 외부에서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변수는 실제 경기에서 생각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2026 월드컵은 48개국으로 대회 규모가 확대된 첫 번째 대회입니다. 여기서 48개국 확대 포맷이란 기존 32개국 체제에서 16개국이 늘어나면서 각 조 4팀 중 상위 2팀과 각 조 3위 팀 중 성적 상위 8팀이 32강에 오르는 새로운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 변화로 인해 아이티나 스코틀랜드 같은 팀도 이론적으로 3위로도 토너먼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번 C조는 '강팀이 이길 것'이라는 예측보다 훨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습니다. 24년 우승 가뭄을 안고 있는 브라질, 감독 교체라는 변수를 품은 모로코, 12번의 실패를 딛고 선 스코틀랜드, 그리고 모든 악조건을 뚫고 여기까지 온 아이티. 저는 이 조의 경기들이 단순히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 각 팀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 내려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훨씬 더 값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팀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을지, 경기가 시작되면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